2009년 11월 27일
한국 프로야구의 4대 비극 ④ - 언젠가 펼쳐질 임수혁의 날개
롯데팬들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연도가 몇개가 있을듯 합니다.
1983년과 1992년의 행복한 기억과
2000년... 그 슬프디 슬픈 기억이..

1983년과 1992년의 행복한 기억과
2000년... 그 슬프디 슬픈 기억이..

◆ 프로 입단 전부터 떡잎부터 달랐던 그
임수혁은 서울고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써의 두각을 분명하게 보이던 선수였습니다.
서울고 졸업 이후 고려대로 진학한 그는
고려대 2학년 시절부터 3년동안 국가대표 안방마님을 놓쳐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인망과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상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인망 뿐 아니라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그는 88년 새내기 시절 연세대와의 정기전때
1:4로 고려대가 뒤지고 있던 8회초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투런홈런을 때려버립니다.
심지어 홈런을 친 투수가 무려 당대 최고의 좌완 조규제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임 수 혁 이라는 이름 석자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겨 졌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특히 1년 후배인 이상훈과의 스토리는 포스팅 끝까지 적어도 모자랄 정도겠군요.
어쨌든 눈에 띄는 선수는 선수는 어디 가서도 튀는 법이었던 터라 고려대를 졸업한 임수혁은
1992년 LG의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바로 국군체육회로 가서 군복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후 2년 뒤인 1994년 롯데의 2차지명을 받고 임수혁은 자신의 팀인 롯데로 향하게 됩니다.

◆ 결정적이었기에 빛났던 그..
임수혁 선수가 입단할 당시 롯데의 안방마님은
89년 입단한 김선일과 임수혁의 대학 동기인 강성우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1994년 당시 김선일의 기량이 나이로 인해 떨어지는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주전 포수의 자리는 대부분 강성우에게 많이 돌아가긴 했지만
두 선수 모두 공통점으로 공경력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롯데는 94년 입단 당시인 임수혁을 대부분 DH로 쓰며 대타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95년 주전이었던 김선일과 강성우를 밀어내고 그에게 포수마스크를 맡기게 됩니다.
물론 수비나 투수리드, 도루저지의 부분에서는 임수혁은 동기인 강성우보다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매년 롯데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거포의 부족]이라는 약점을 없애기 위해
강성우보다는 포기할수 없는 공격적인 매력의 공격형포수 임수혁을 주전 기용한것입니다.
95년 임수혁은 그런 롯데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그해 1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당시 화려하게 등장한 롯데의 대포 마해영의 18개를 이어 팀내 홈런 2위를 랭크했습니다.
당시는 25개 안밖이 홈런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수 있습니다.
어쨌든 거포부족이었던 롯데는 95년 마해영과 임수혁이라는 두 거포를 동시에 보유하게 되어
프로야구 원년 [김용희 - 김용철]의 용용표 이후
그렇게 팬들은 갈망하던 [마해영 - 임수혁]이라는 마림포라는 중화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95년 롯데팬들을 잊을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그는 96년 비교적 홈런수는 적어지긴 했지만
3할의 타율과 4할의 장타율로 당시 롯데를 팀 티율 1위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만 이 96년 무릎부상을 당한 이후 아주 긴 부진에 빠졌던 것도 사실었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초반 1,2년 반짝하다 부상으로 인해
그 기량이 일반선수 이하로 저하되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임수혁의 경우 96년 이후 2할5푼 이상의 타율을 넘긴적도 없었구요
홈런도 무릎부상을 당한 1996년 이후 단 10개를 넘긴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가 롯데팬들의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을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가장 결정적일때 믿을수 있는건 임수혁]이라는 모 감독의 말이 그 이유가 되겠군요.
큰경기에 강하고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타격을 보여주던 그는
비록 전체적인 성적이 좋지 않고 몸이 않좋았지만 팬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특히 95년 OB와의 한국 시리즈 5차전때 2승 2패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10회초 임수혁은 중견수 정수근의 뒤 팬스까지 날아가는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내게 되고
롯데는 5차전 승리를 하며 우승까지 단 1승을 남겨두게 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6차전 진필중의 엄청난 피칭과 7차전 박정태의 통한의 실책으로 우승을 OB에게 넘겨줍니다.]
또 99년 롯데팬들에게 잊을수 없는 [아직까지 회자되는] 전율을 보여주었는데요
당시 4차전까지 1승 3패로 수적 열세에 몰리고 있던 롯데는
5차전 6차전에서 각각 호세의 역전 스리런 홈런과 7이닝 무안타 퍼팩트 피칭으로
겨우 3승3패의 상황까지 만들어 마지막 운명의 7차전이 시작됩니다.
이미 한계의 도달해버린 체력과 마지막이라는 긴장감으로 내리 두점을 먼저 내주었고
6회 결국 호세가 솔로홈런을 때리며 기세 등등하게 홈으로 들어올때 일은 터졌습니다.
대구관중들이 호세에게 물병을 투척하자 이에 흥분한 호세는 관중석으로 야구 배트를 던져버렸고
이에 주심은 호세에게 퇴장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대구구장은 내 외야석 오물이 투척되고
자이언츠 선수진들은 덕아웃에서 잠자코 이 모습을 보았지만
경기가 계속 지연이 되자 임수혁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이 짐을 싸고 덕아웃에서 퇴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김명성 감독의 만류와 주장 박정태의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경기는 재개 됩니다.
7회 마해영이 대구팬들에게 항의를 하듯 동점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만들지만
7회 박석진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백투백홈언을 맞으며 롯데는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의 득점 찬스가 모두 무산되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던 9회가 시작됩니다.
1아웃 주자 1루 상태 원래대로라면 호세의 타석이어야만 했던 4번타자의 자리에
시즌 내내 무릎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던 임수혁이 타석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투수는 당시 삼성에서 엄청난 피칭을 하던 애니콜 임창용선수였는데
홈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창용이 바깥쪽 낮은공을 찔러넣었지만
예상이라도 한듯 그 강렬한 공을 밀어쳐 가운데 스탠드에 꽂혀버리는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습니다
두 선수단 사이의 기 싸움은 그걸로 끝..
이후 11회 김민재의 결승 안타와 주형광의 1이닝 퍼팩트 피칭은.
그렇게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진출하게 했습니다.
3승 1패의 수세에서 3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로 가게된 명승부인 99년 PO7차전 이후
당시를 회상하는 야구팬들의 기억속에서 임수혁이라는 이름은 강렬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 긴시간을 2루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나이..
1999년 비록 한화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92년 우승 이후 지지부진하다면 지지부진하던 롯데가
한국시리즈 까지 간것은 선수단에 좋은 분위기를 불러왔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새천년] 2000년 시즌이 시작되고
또 다시 화끈한 홈런을 보기 위해 관중들은 다시 사직구장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2000년도 역시 99년과 마찬가지로 관중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 자체도 그에 보답하듯 개막 이후 상당히 승승장구 하는 편이었고
그러던 도중 [그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 vs 롯데 자이언트전이 있던 잠실.
1루에 있던 임수혁은 롯데의 용병 우즈의 진루로 인해 2루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롯데의 득점을 기대하며 다음 타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1루에 있던 용병 우드가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2루에 임수혁이 있던 터라 도루를 할수도 없었지만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한 우드에 이어
덕아웃에 있던 트레이너 까지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2루에 있던 임수혁은 갑자기 의식을 잃은채 다리를 떨며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2루수도, 유격수도 없던상황이었던 터라 어리둥절해 있던 양팀 선수와 관중들은
트레이너와 양팀 선수들이 모두 임수혁에게로 모여들고 나서야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쉬었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실것이 올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될줄은.. 아무도 모른채 말입니다.
▲ 롯데팬이 아닌 다른팀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써도 이 장면을 볼때마다 안타까워지니..
과연 롯데팬들의 임수혁을 향한 기다림은 얼마나 일까요...
그의 병명은 [심장 부정맥]
간단히 심장이 불규칙하게 가끔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그런 병입니다.
임수혁 선수는 기존에도 이 병 때문에 위험한적이 몇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넘어갔다고 합니다만
이번의 경우는 2루로 질주 했지만 갑자기 심장이 느리게 뛰면서
뇌로 올라가야할 혈액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는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임수혁 선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만것입니다.
이후 선수들과 코치진들, 심판진들에게 둘러쌓였지만
그들중 아무도 이 사태에 적응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몇분이 지나서야 들것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핼멧을 멋기고 허리띠를 풀고 옮기는 일 뿐이었습니다.
(더운날 훈련하다 탈진한 선수 옮기듯... 말이죠)
심지어 몇십분을 덜컹거리는 구급차안에서 보냈던 그를 태운 구급차는
강남성모병원에 도착했지만 간신히 호흡과 맥박을 되돌릴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 이후.. 임수혁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인간으로써 할수 없는 일
그가 2루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야구 동료들과
팬들은 모두가 그의 부상소식에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가 쓰러진지 2달 뒤인 6월 KBO는 임수혁 돕기행사를 시작했고 방문하는 팬 1인당 500원씩을 받으며
그 돈을 모두 임수혁의 치로비로 전달 했습니다.
이날 잠실에는 두산 vs 삼성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날 이 행사에서 삼성라이온즈는 [같이 뛰자 임수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성금과 쾌유를 비는 많은 팬들의 목소리를 임수혁의 부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올스타전때도 승리팀 감독의 상금, 홈런레이스 상금 등을 모두
임수혁의 치료비로 보태기로 했고 선수들도 출장수당을 모은 1000만원을 모두 성금으로 전달했습니다.
이후 임수혁을 위한 경매도 열렸고 100여점의 선수들의 물품이 모두 1000만원 이상에 팔려
그 돈도 다시 임수혁선수에게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병지 골키퍼, 박찬호 투수, 이만수 코치, 최경주, 랜디 존슨(실제) 투수
김동성 쇼트트랙 선수, 거스히딩크, 홍명보, 안정환, 구대성, 교려대학교 야구부,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 등이 임수혁 선수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였던 경기장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이때까지도 허술하기 짝이없었습니다.
그러던 2003년 4월 차츰 임수혁이라는 선수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저 갈때 쯔음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이 롯데와 LG트윈스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롯데 자이언츠는 이 사건 당시
'법률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의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보상을 할 의사는 있다.
3년간 총 2억원 상당을 이미 지원했으며 소송을 제기한 이상 임수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
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수혁 선수 측에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고
롯데자이언츠와 LG트윈스는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에게 4억 2천만원씩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LG트윈스가 이의제기를 법원에 하고 이것이 조정이 되어
보상금액은 2억원 대로 크게 줄어들고 말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법정다툼까지 이어지자 8개구단 모두 선수의 안전관리에 대해서 공감하고
경기장안으로 구급차가 들어올수 있도록 하고 응급구조사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까지 모두가 지속적으로 임수혁 선수를 돕고
그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의 몇몇 몰지각한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분의 네티즌들이 임수혁의 기사 아래
임수혁 선수와 임수혁의 가족을을 비방하는 차마 보기 힘든 악플을 달아놓은것이 문제였습니다.
[몇년째 누워만 있는 (임)수혁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욕을 하는겁니까]
라고 임수혁 선수의 부친도 인터뷰에서 밝혔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모 커뮤니티에서 임수혁 선수와 그의 가족을 비방하는 것이 밝혀졌고
임수혁 선수에게 성적모욕을 주거나, 패러디물을 올리던 그들을
임수혁의 가족들은 그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들을 모두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조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인터넷의 여기저기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임수혁에 대한 악플러들을 처벌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나올정도로 이 사건은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결국 반성했다고 생각한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은 고소를 취하했지만..
▲ 한때 이슈가 되었던 고소 취하 이후 악플러의 반응
뭐...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이후로 임수혁선수에 관한 악플이 올라오는 경우는 상당히 적어졌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임수혁 선수의 가족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딱히 화를 낼 생각은 없군요.
이후 차츰 잊혀져 가던 임수혁 선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 생각났다를 반복하는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 기억속에는 그가 존재한다는것.
야구팬들은 아직도 95년 플레이오프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와
기적과도 같은 승부로 회자되는 99년 PO7차전을 떠올리며
[영웅]이었던 임수혁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가 반드시 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환호할수 있길
야구팬으로써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 목 차<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① 유망주 포수 김영신의 추락.
② 타이거즈의 4번타자 이호성의 마지막
③ 프로야구를 뒤집어 놓은 병역비리
④ 언젠가 펼쳐질 임수혁의 날개.
자료참고 사이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1553
http://ko.wikipedia.org/wiki/%EC%9E%84%EC%88%98%ED%98%81
서울고 졸업 이후 고려대로 진학한 그는
고려대 2학년 시절부터 3년동안 국가대표 안방마님을 놓쳐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인망과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상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인망 뿐 아니라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그는 88년 새내기 시절 연세대와의 정기전때
1:4로 고려대가 뒤지고 있던 8회초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투런홈런을 때려버립니다.
심지어 홈런을 친 투수가 무려 당대 최고의 좌완 조규제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임 수 혁 이라는 이름 석자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겨 졌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특히 1년 후배인 이상훈과의 스토리는 포스팅 끝까지 적어도 모자랄 정도겠군요.
어쨌든 눈에 띄는 선수는 선수는 어디 가서도 튀는 법이었던 터라 고려대를 졸업한 임수혁은
1992년 LG의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바로 국군체육회로 가서 군복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후 2년 뒤인 1994년 롯데의 2차지명을 받고 임수혁은 자신의 팀인 롯데로 향하게 됩니다.

◆ 결정적이었기에 빛났던 그..
임수혁 선수가 입단할 당시 롯데의 안방마님은
89년 입단한 김선일과 임수혁의 대학 동기인 강성우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1994년 당시 김선일의 기량이 나이로 인해 떨어지는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주전 포수의 자리는 대부분 강성우에게 많이 돌아가긴 했지만
두 선수 모두 공통점으로 공경력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롯데는 94년 입단 당시인 임수혁을 대부분 DH로 쓰며 대타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95년 주전이었던 김선일과 강성우를 밀어내고 그에게 포수마스크를 맡기게 됩니다.
물론 수비나 투수리드, 도루저지의 부분에서는 임수혁은 동기인 강성우보다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매년 롯데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거포의 부족]이라는 약점을 없애기 위해
강성우보다는 포기할수 없는 공격적인 매력의 공격형포수 임수혁을 주전 기용한것입니다.
95년 임수혁은 그런 롯데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그해 1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당시 화려하게 등장한 롯데의 대포 마해영의 18개를 이어 팀내 홈런 2위를 랭크했습니다.
당시는 25개 안밖이 홈런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수 있습니다.
어쨌든 거포부족이었던 롯데는 95년 마해영과 임수혁이라는 두 거포를 동시에 보유하게 되어
프로야구 원년 [김용희 - 김용철]의 용용표 이후
그렇게 팬들은 갈망하던 [마해영 - 임수혁]이라는 마림포라는 중화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95년 롯데팬들을 잊을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그는 96년 비교적 홈런수는 적어지긴 했지만
3할의 타율과 4할의 장타율로 당시 롯데를 팀 티율 1위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만 이 96년 무릎부상을 당한 이후 아주 긴 부진에 빠졌던 것도 사실었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초반 1,2년 반짝하다 부상으로 인해
그 기량이 일반선수 이하로 저하되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임수혁의 경우 96년 이후 2할5푼 이상의 타율을 넘긴적도 없었구요
홈런도 무릎부상을 당한 1996년 이후 단 10개를 넘긴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가 롯데팬들의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을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가장 결정적일때 믿을수 있는건 임수혁]이라는 모 감독의 말이 그 이유가 되겠군요.
큰경기에 강하고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타격을 보여주던 그는
비록 전체적인 성적이 좋지 않고 몸이 않좋았지만 팬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특히 95년 OB와의 한국 시리즈 5차전때 2승 2패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10회초 임수혁은 중견수 정수근의 뒤 팬스까지 날아가는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내게 되고
롯데는 5차전 승리를 하며 우승까지 단 1승을 남겨두게 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6차전 진필중의 엄청난 피칭과 7차전 박정태의 통한의 실책으로 우승을 OB에게 넘겨줍니다.]
또 99년 롯데팬들에게 잊을수 없는 [아직까지 회자되는] 전율을 보여주었는데요
당시 4차전까지 1승 3패로 수적 열세에 몰리고 있던 롯데는
5차전 6차전에서 각각 호세의 역전 스리런 홈런과 7이닝 무안타 퍼팩트 피칭으로
겨우 3승3패의 상황까지 만들어 마지막 운명의 7차전이 시작됩니다.
이미 한계의 도달해버린 체력과 마지막이라는 긴장감으로 내리 두점을 먼저 내주었고
6회 결국 호세가 솔로홈런을 때리며 기세 등등하게 홈으로 들어올때 일은 터졌습니다.
대구관중들이 호세에게 물병을 투척하자 이에 흥분한 호세는 관중석으로 야구 배트를 던져버렸고
이에 주심은 호세에게 퇴장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대구구장은 내 외야석 오물이 투척되고
자이언츠 선수진들은 덕아웃에서 잠자코 이 모습을 보았지만
경기가 계속 지연이 되자 임수혁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이 짐을 싸고 덕아웃에서 퇴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김명성 감독의 만류와 주장 박정태의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경기는 재개 됩니다.
7회 마해영이 대구팬들에게 항의를 하듯 동점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만들지만
7회 박석진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백투백홈언을 맞으며 롯데는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의 득점 찬스가 모두 무산되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던 9회가 시작됩니다.
1아웃 주자 1루 상태 원래대로라면 호세의 타석이어야만 했던 4번타자의 자리에
시즌 내내 무릎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던 임수혁이 타석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투수는 당시 삼성에서 엄청난 피칭을 하던 애니콜 임창용선수였는데
홈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창용이 바깥쪽 낮은공을 찔러넣었지만
예상이라도 한듯 그 강렬한 공을 밀어쳐 가운데 스탠드에 꽂혀버리는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습니다
두 선수단 사이의 기 싸움은 그걸로 끝..
이후 11회 김민재의 결승 안타와 주형광의 1이닝 퍼팩트 피칭은.
그렇게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진출하게 했습니다.
3승 1패의 수세에서 3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로 가게된 명승부인 99년 PO7차전 이후
당시를 회상하는 야구팬들의 기억속에서 임수혁이라는 이름은 강렬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 긴시간을 2루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나이..
1999년 비록 한화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92년 우승 이후 지지부진하다면 지지부진하던 롯데가
한국시리즈 까지 간것은 선수단에 좋은 분위기를 불러왔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새천년] 2000년 시즌이 시작되고
또 다시 화끈한 홈런을 보기 위해 관중들은 다시 사직구장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2000년도 역시 99년과 마찬가지로 관중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 자체도 그에 보답하듯 개막 이후 상당히 승승장구 하는 편이었고
그러던 도중 [그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 vs 롯데 자이언트전이 있던 잠실.
1루에 있던 임수혁은 롯데의 용병 우즈의 진루로 인해 2루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롯데의 득점을 기대하며 다음 타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1루에 있던 용병 우드가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2루에 임수혁이 있던 터라 도루를 할수도 없었지만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한 우드에 이어
덕아웃에 있던 트레이너 까지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2루에 있던 임수혁은 갑자기 의식을 잃은채 다리를 떨며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2루수도, 유격수도 없던상황이었던 터라 어리둥절해 있던 양팀 선수와 관중들은
트레이너와 양팀 선수들이 모두 임수혁에게로 모여들고 나서야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쉬었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실것이 올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될줄은.. 아무도 모른채 말입니다.

과연 롯데팬들의 임수혁을 향한 기다림은 얼마나 일까요...
그의 병명은 [심장 부정맥]
간단히 심장이 불규칙하게 가끔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그런 병입니다.
임수혁 선수는 기존에도 이 병 때문에 위험한적이 몇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넘어갔다고 합니다만
이번의 경우는 2루로 질주 했지만 갑자기 심장이 느리게 뛰면서
뇌로 올라가야할 혈액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는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임수혁 선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만것입니다.
이후 선수들과 코치진들, 심판진들에게 둘러쌓였지만
그들중 아무도 이 사태에 적응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몇분이 지나서야 들것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핼멧을 멋기고 허리띠를 풀고 옮기는 일 뿐이었습니다.
(더운날 훈련하다 탈진한 선수 옮기듯... 말이죠)
심지어 몇십분을 덜컹거리는 구급차안에서 보냈던 그를 태운 구급차는
강남성모병원에 도착했지만 간신히 호흡과 맥박을 되돌릴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 이후.. 임수혁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인간으로써 할수 없는 일
그가 2루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야구 동료들과
팬들은 모두가 그의 부상소식에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가 쓰러진지 2달 뒤인 6월 KBO는 임수혁 돕기행사를 시작했고 방문하는 팬 1인당 500원씩을 받으며
그 돈을 모두 임수혁의 치로비로 전달 했습니다.
이날 잠실에는 두산 vs 삼성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날 이 행사에서 삼성라이온즈는 [같이 뛰자 임수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성금과 쾌유를 비는 많은 팬들의 목소리를 임수혁의 부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올스타전때도 승리팀 감독의 상금, 홈런레이스 상금 등을 모두
임수혁의 치료비로 보태기로 했고 선수들도 출장수당을 모은 1000만원을 모두 성금으로 전달했습니다.
이후 임수혁을 위한 경매도 열렸고 100여점의 선수들의 물품이 모두 1000만원 이상에 팔려
그 돈도 다시 임수혁선수에게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병지 골키퍼, 박찬호 투수, 이만수 코치, 최경주, 랜디 존슨(실제) 투수
김동성 쇼트트랙 선수, 거스히딩크, 홍명보, 안정환, 구대성, 교려대학교 야구부,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 등이 임수혁 선수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였던 경기장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이때까지도 허술하기 짝이없었습니다.
그러던 2003년 4월 차츰 임수혁이라는 선수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저 갈때 쯔음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이 롯데와 LG트윈스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롯데 자이언츠는 이 사건 당시
'법률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의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보상을 할 의사는 있다.
3년간 총 2억원 상당을 이미 지원했으며 소송을 제기한 이상 임수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
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수혁 선수 측에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고
롯데자이언츠와 LG트윈스는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에게 4억 2천만원씩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LG트윈스가 이의제기를 법원에 하고 이것이 조정이 되어
보상금액은 2억원 대로 크게 줄어들고 말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법정다툼까지 이어지자 8개구단 모두 선수의 안전관리에 대해서 공감하고
경기장안으로 구급차가 들어올수 있도록 하고 응급구조사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까지 모두가 지속적으로 임수혁 선수를 돕고
그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의 몇몇 몰지각한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분의 네티즌들이 임수혁의 기사 아래
임수혁 선수와 임수혁의 가족을을 비방하는 차마 보기 힘든 악플을 달아놓은것이 문제였습니다.
[몇년째 누워만 있는 (임)수혁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욕을 하는겁니까]
라고 임수혁 선수의 부친도 인터뷰에서 밝혔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모 커뮤니티에서 임수혁 선수와 그의 가족을 비방하는 것이 밝혀졌고
임수혁 선수에게 성적모욕을 주거나, 패러디물을 올리던 그들을
임수혁의 가족들은 그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들을 모두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조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인터넷의 여기저기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임수혁에 대한 악플러들을 처벌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나올정도로 이 사건은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결국 반성했다고 생각한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은 고소를 취하했지만..

뭐...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이후로 임수혁선수에 관한 악플이 올라오는 경우는 상당히 적어졌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임수혁 선수의 가족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딱히 화를 낼 생각은 없군요.
이후 차츰 잊혀져 가던 임수혁 선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 생각났다를 반복하는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 기억속에는 그가 존재한다는것.
야구팬들은 아직도 95년 플레이오프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와
기적과도 같은 승부로 회자되는 99년 PO7차전을 떠올리며
[영웅]이었던 임수혁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가 반드시 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환호할수 있길
야구팬으로써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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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유망주 포수 김영신의 추락.
② 타이거즈의 4번타자 이호성의 마지막
③ 프로야구를 뒤집어 놓은 병역비리
④ 언젠가 펼쳐질 임수혁의 날개.
자료참고 사이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1553
http://ko.wikipedia.org/wiki/%EC%9E%84%EC%88%98%ED%9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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