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의 4대 비극 ④ - 언젠가 펼쳐질 임수혁의 날개

롯데팬들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연도가 몇개가 있을듯 합니다.

1983년과 1992년의 행복한 기억과

2000년... 그 슬프디 슬픈 기억이..



◆ 프로 입단 전부터 떡잎부터 달랐던 그




임수혁은 서울고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써의 두각을 분명하게 보이던 선수였습니다.

서울고 졸업 이후 고려대로 진학한 그는

고려대 2학년 시절부터 3년동안 국가대표 안방마님을 놓쳐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인망과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상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인망 뿐 아니라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그는 88년 새내기 시절 연세대와의 정기전때

1:4로 고려대가 뒤지고 있던 8회초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투런홈런을 때려버립니다.

심지어 홈런을 친 투수가 무려 당대 최고의 좌완 조규제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임 수 혁 이라는 이름 석자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겨 졌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특히 1년 후배인 이상훈과의 스토리는 포스팅 끝까지 적어도 모자랄 정도겠군요.

어쨌든 눈에 띄는 선수는 선수는 어디 가서도 튀는 법이었던 터라 고려대를 졸업한 임수혁은

1992년 LG의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바로 국군체육회로 가서 군복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후 2년 뒤인 1994년 롯데의 2차지명을 받고 임수혁은 자신의 팀인 롯데로 향하게 됩니다.




◆ 결정적이었기에 빛났던 그..



임수혁 선수가 입단할 당시 롯데의 안방마님은

89년 입단한 김선일과 임수혁의 대학 동기인 강성우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1994년 당시 김선일의 기량이 나이로 인해 떨어지는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주전 포수의 자리는 대부분 강성우에게 많이 돌아가긴 했지만

두 선수 모두 공통점으로 공경력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롯데는 94년 입단 당시인 임수혁을 대부분 DH로 쓰며 대타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95년 주전이었던 김선일과 강성우를 밀어내고 그에게 포수마스크를 맡기게 됩니다.

물론 수비나 투수리드, 도루저지의 부분에서는 임수혁은 동기인 강성우보다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매년 롯데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거포의 부족]이라는 약점을 없애기 위해

강성우보다는 포기할수 없는 공격적인 매력의 공격형포수 임수혁을 주전 기용한것입니다.

95년 임수혁은 그런 롯데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그해 1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당시 화려하게 등장한 롯데의 대포 마해영의 18개를 이어 팀내 홈런 2위를 랭크했습니다.

당시는 25개 안밖이 홈런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수 있습니다.

어쨌든 거포부족이었던 롯데는 95년 마해영과 임수혁이라는 두 거포를 동시에 보유하게 되어

프로야구 원년 [김용희 - 김용철]의 용용표 이후

그렇게 팬들은 갈망하던 [마해영 - 임수혁]이라는 마림포라는 중화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95년 롯데팬들을 잊을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그는 96년 비교적 홈런수는 적어지긴 했지만

3할의 타율과 4할의 장타율로 당시 롯데를 팀 티율 1위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만 이 96년 무릎부상을 당한 이후 아주 긴 부진에 빠졌던 것도 사실었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초반 1,2년 반짝하다 부상으로 인해

그 기량이 일반선수 이하로 저하되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임수혁의 경우 96년 이후 2할5푼 이상의 타율을 넘긴적도 없었구요

홈런도 무릎부상을 당한 1996년 이후 단 10개를 넘긴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가 롯데팬들의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을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가장 결정적일때 믿을수 있는건 임수혁]이라는 모 감독의 말이 그 이유가 되겠군요.

큰경기에 강하고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타격을 보여주던 그는

비록 전체적인 성적이 좋지 않고 몸이 않좋았지만 팬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특히 95년 OB와의 한국 시리즈 5차전때 2승 2패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10회초 임수혁은 중견수 정수근의 뒤 팬스까지 날아가는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내게 되고

롯데는 5차전 승리를 하며 우승까지 단 1승을 남겨두게 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6차전 진필중의 엄청난 피칭과 7차전 박정태의 통한의 실책으로 우승을 OB에게 넘겨줍니다.]

또 99년 롯데팬들에게 잊을수 없는 [아직까지 회자되는] 전율을 보여주었는데요

당시 4차전까지 1승 3패로 수적 열세에 몰리고 있던 롯데는

5차전 6차전에서 각각 호세의 역전 스리런 홈런과 7이닝 무안타 퍼팩트 피칭으로

겨우 3승3패의 상황까지 만들어 마지막 운명의 7차전이 시작됩니다.

이미 한계의 도달해버린 체력과 마지막이라는 긴장감으로 내리 두점을 먼저 내주었고

6회 결국 호세가 솔로홈런을 때리며 기세 등등하게 홈으로 들어올때 일은 터졌습니다.

대구관중들이 호세에게 물병을 투척하자 이에 흥분한 호세는 관중석으로 야구 배트를 던져버렸고

이에 주심은 호세에게 퇴장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대구구장은 내 외야석 오물이 투척되고

자이언츠 선수진들은 덕아웃에서 잠자코 이 모습을 보았지만

경기가 계속 지연이 되자 임수혁을 포함한 몇몇 선수들이 짐을 싸고 덕아웃에서 퇴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김명성 감독의 만류와 주장 박정태의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경기는 재개 됩니다.

7회 마해영이 대구팬들에게 항의를 하듯 동점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만들지만

7회 박석진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백투백홈언을 맞으며 롯데는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의 득점 찬스가 모두 무산되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던 9회가 시작됩니다.

1아웃 주자 1루 상태 원래대로라면 호세의 타석이어야만 했던 4번타자의 자리에

시즌 내내 무릎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던 임수혁이 타석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투수는 당시 삼성에서 엄청난 피칭을 하던 애니콜 임창용선수였는데

홈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창용이 바깥쪽 낮은공을 찔러넣었지만

예상이라도 한듯 그 강렬한 공을 밀어쳐 가운데 스탠드에 꽂혀버리는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습니다

두 선수단 사이의 기 싸움은 그걸로 끝..

이후 11회 김민재의 결승 안타와 주형광의 1이닝 퍼팩트 피칭은.

그렇게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진출하게 했습니다.

3승 1패의 수세에서 3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로 가게된 명승부인 99년 PO7차전 이후

당시를 회상하는 야구팬들의 기억속에서 임수혁이라는 이름은 강렬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 긴시간을 2루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나이..




1999년 비록 한화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92년 우승 이후 지지부진하다면 지지부진하던 롯데가

한국시리즈 까지 간것은 선수단에 좋은 분위기를 불러왔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새천년] 2000년 시즌이 시작되고

또 다시 화끈한 홈런을 보기 위해 관중들은 다시 사직구장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2000년도 역시 99년과 마찬가지로 관중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 자체도 그에 보답하듯 개막 이후 상당히 승승장구 하는 편이었고

그러던 도중 [그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000년 4월 18일 LG트윈스 vs 롯데 자이언트전이 있던 잠실.

1루에 있던 임수혁은 롯데의 용병 우즈의 진루로 인해 2루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롯데의 득점을 기대하며 다음 타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1루에 있던 용병 우드가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2루에 임수혁이 있던 터라 도루를 할수도 없었지만 갑자기 2루로 달리기 시작한 우드에 이어

덕아웃에 있던 트레이너 까지 2루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2루에 있던 임수혁은 갑자기 의식을 잃은채 다리를 떨며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2루수도, 유격수도 없던상황이었던 터라 어리둥절해 있던 양팀 선수와 관중들은

트레이너와 양팀 선수들이 모두 임수혁에게로 모여들고 나서야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쉬었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실것이 올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될줄은.. 아무도 모른채 말입니다.


▲ 롯데팬이 아닌 다른팀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써도 이 장면을 볼때마다 안타까워지니..
과연 롯데팬들의 임수혁을 향한 기다림은 얼마나 일까요...




그의 병명은 [심장 부정맥]

간단히 심장이 불규칙하게 가끔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그런 병입니다.

임수혁 선수는 기존에도 이 병 때문에 위험한적이 몇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넘어갔다고 합니다만

이번의 경우는 2루로 질주 했지만 갑자기 심장이 느리게 뛰면서

뇌로 올라가야할 혈액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는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임수혁 선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만것입니다.

이후 선수들과 코치진들, 심판진들에게 둘러쌓였지만

그들중 아무도 이 사태에 적응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몇분이 지나서야 들것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핼멧을 멋기고 허리띠를 풀고 옮기는 일 뿐이었습니다.
(더운날 훈련하다 탈진한 선수 옮기듯... 말이죠)

심지어  몇십분을 덜컹거리는 구급차안에서 보냈던 그를 태운 구급차는

강남성모병원에 도착했지만 간신히 호흡과 맥박을 되돌릴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 이후.. 임수혁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인간으로써 할수 없는 일





그가 2루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야구 동료들과

팬들은 모두가 그의 부상소식에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가 쓰러진지 2달 뒤인 6월 KBO는 임수혁 돕기행사를 시작했고 방문하는 팬 1인당 500원씩을 받으며

그 돈을 모두 임수혁의 치로비로 전달 했습니다.

이날 잠실에는 두산 vs 삼성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날 이 행사에서 삼성라이온즈는 [같이 뛰자 임수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성금과 쾌유를 비는 많은 팬들의 목소리를 임수혁의 부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올스타전때도 승리팀 감독의 상금, 홈런레이스 상금 등을 모두

임수혁의 치료비로 보태기로 했고 선수들도 출장수당을 모은 1000만원을 모두 성금으로 전달했습니다.

이후 임수혁을 위한 경매도 열렸고 100여점의 선수들의 물품이 모두 1000만원 이상에 팔려

그 돈도 다시 임수혁선수에게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병지 골키퍼, 박찬호 투수, 이만수 코치, 최경주, 랜디 존슨(실제) 투수
김동성 쇼트트랙 선수, 거스히딩크, 홍명보, 안정환, 구대성, 교려대학교 야구부,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 등이 임수혁 선수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였던 경기장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이때까지도 허술하기 짝이없었습니다.

그러던 2003년 4월 차츰 임수혁이라는 선수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저 갈때 쯔음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이 롯데와 LG트윈스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롯데 자이언츠는 이 사건 당시

'법률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의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보상을 할 의사는 있다.

3년간 총 2억원 상당을 이미 지원했으며 소송을 제기한 이상 임수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

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임수혁 선수 측에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고

롯데자이언츠와 LG트윈스는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에게 4억 2천만원씩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LG트윈스가 이의제기를 법원에 하고 이것이 조정이 되어

보상금액은 2억원 대로 크게 줄어들고 말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법정다툼까지 이어지자 8개구단 모두 선수의 안전관리에 대해서 공감하고

경기장안으로 구급차가 들어올수 있도록 하고 응급구조사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까지 모두가 지속적으로 임수혁 선수를 돕고

그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의 몇몇 몰지각한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분의 네티즌들이 임수혁의 기사 아래

임수혁 선수와 임수혁의 가족을을 비방하는 차마 보기 힘든 악플을 달아놓은것이 문제였습니다.

[몇년째 누워만 있는 (임)수혁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욕을 하는겁니까]

라고 임수혁 선수의 부친도 인터뷰에서 밝혔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모 커뮤니티에서 임수혁 선수와 그의 가족을 비방하는 것이 밝혀졌고

임수혁 선수에게 성적모욕을 주거나, 패러디물을 올리던 그들을

임수혁의 가족들은 그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들을 모두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조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인터넷의 여기저기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임수혁에 대한 악플러들을 처벌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나올정도로 이 사건은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결국 반성했다고 생각한 임수혁 선수의 가족들은 고소를 취하했지만..

▲ 한때 이슈가 되었던 고소 취하 이후 악플러의 반응


뭐...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이후로 임수혁선수에 관한 악플이 올라오는 경우는 상당히 적어졌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임수혁 선수의 가족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딱히 화를 낼 생각은 없군요.


이후 차츰 잊혀져 가던 임수혁 선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 생각났다를 반복하는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 기억속에는 그가 존재한다는것.

야구팬들은 아직도 95년 플레이오프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와

기적과도 같은 승부로 회자되는 99년 PO7차전을 떠올리며

[영웅]이었던 임수혁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가 반드시 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환호할수 있길

야구팬으로써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 목  차<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① 유망주 포수 김영신의 추락.
② 타이거즈의 4번타자 이호성의 마지막
③ 프로야구를 뒤집어 놓은 병역비리
④ 언젠가 펼쳐질 임수혁의 날개.






자료참고 사이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1553


http://ko.wikipedia.org/wiki/%EC%9E%84%EC%88%98%ED%98%81




이글루스 가든 -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글루人!

by Elisha | 2009/11/27 19:11 | 나름쓰는 연재물 | 트랙백 | 핑백(3) | 덧글(6)

삼성이 오성이 된 이유를 분석해보자.



일단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을 앞세워 전체적인 프로야구가 흥행한것은 좋았지만

시즌이 시작함에 따라 삼성을 포함한 많은 구단이 예년보다 심각한 부상병동이 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삼성은 시즌 중반 안지만, 진갑용, 박진만 등 투타의 주축선수들이 모두 빠지고

무너지는 선발, 방화범 인증 불펜, 노아웃 만루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쿨하게 버려주는 타선

시즌 초에는 새 용병이었던 에르난데스와 2009시즌 [노예]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정현욱이 부진 및 부상으로 2군행

이후 안지만도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인해 나가 떨어졌고

진갑용 또한 시즌 초부터 삐끗삐끗 하더니 결국 손목에 공을 맞고 시즌아웃..

이후 박진만도 고질적인 허리-어깨 부상으로 인해 2군과 1군을 왔다 갔다 거렸고

나름 삼성에서 기대를 가졌던 박석민 또한 들쭉 날쭉한 컨디션 덕에 2군과 1군을 자주 들락날락 거렸으며

시즌 중반 양준혁 또한 주루 플레이 도중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

오승환도 시즌 초반부터 상당히 안좋은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4강 경쟁이 가장 치열할때 시즌 아웃.

부활할거라 믿었던 배영수도 시즌 최다패 선두를 달리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선동렬이 세심하게 심형을 기울여 키웠다는 차우찬은 엄청난 롤러코스터(내리막이 더 많은)를 탔고

1지망으로 입단하며 포스트 이종범이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김상수도 바닥을 쳤다.


대충 부상과 부진만 봐도 이정도였고..

새로이 영입했던 크루세타의 경우 전반기에만 볼넷을 70개 이상을 기록하면서

제구력이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에르난데스는 자신의 과체중을 이기지 못해 결국 발목부상으로 퇴출 당하는 등

올해도 어김없이 용병 잔혹사가 시작될거라 생각 됬었으며


진갑용의 부상으로 인해 작년 심광호 - 이여상 트레이드와 비슷한 포수 - 유망주 트레이드가 이루어져

채상병 - 지승민의 1:1트레이드가 감행되어 삼성은 나름 진갑용의 부재에 한숨을 돌릴수 있었지만

이미 채상병과 현재윤, 이지영 모두 진갑용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수준이었던 터라 포수 또한 부재였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수 있던 점은

이렇게 주축선수들이 다 빠지고도 이영욱, 이우선 등 2군 자원이 1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주었고

또다시 용병 잔혹사 일거라 생각했던 용병은

에르난데스가 퇴출 된 이후 들어온 브랜든 나이트가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전반기 죽을 쑤었던 크루세타 또한 [싱커]라는 새 구질을 장착하고 제구력을 가다듬어

후반기 들어 볼넷은 30개 이하로 줄이고 삼진은 전반기 대비 60%가량 더 높이며 탈삼진 능력을 인정받았다.

거기다 개막 3연승 이후 연패에 빠져 있던 윤성환은 특단의 대책으로 불팬까지 갔으나..

결국 다시 선발로써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다승왕을 획득하였고

박석민 또한 1,2군을 왔다거리던 도중에 24홈런으로

팀내 홈런 1위로 시즌을 마무리 하며 내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수 있게했고

그저 백업요원일거라 생각했던 강봉규는 어느새 3할 타율을 찍고

삼성의 몇 안되는 3할타자로써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신명철 또한 롯데에서 이적한 이후 아마추어 시절 명성을 찾은듯 강봉규와 더불어 20-20클럽을 달성했다.
(한팀에서 두명의 20-20이 나온건 91년 이순철 - 이호성이 역대 전부)

시즌초에 너무나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정현욱은 5월이 지난 후 다시 자신의 돌직구를 뿌리며

권혁과 함께 필승계투조로 삼성의 이길수 있는 경기는 반드시 이길수 있게 할 수 있게 했다.

또 시즌 중반 긴급하게 수혈되었던 이우선은 각 팀의 에이스들을 상대로 등판하는 불운을 겪긴 했지만

나름 지저분한 변화구를 앞세워 그들을 상대로 패가 0패에 김광현을 상대로 1승을 기록.

그리고 이우선이 선발로 나왔던 경기에서 삼성은 모두 승리하는 이상한 공식마저 세워버린다.

이후 타자진에서는 김재걸을 뒤를 이을 거라는 평가의 2루,3루,유격수가 모두 소화 가능한 손주인이

박진만, 박석민이 없는 유격수와 3루 수비를 주로 보며 흔들리는 내야를 붙잡았다.

또 이영욱도 조동찬 - 이영욱 - 김상수 - 강봉규 - 신명철 발야구 라인을 형성하며

작년 까지 팀 도루 최하위의 수모를 겪었던 삼성을

올해 선감독이 내세웠던 뛰는 야구로 바꾸는데 공을 세웠다.


다만 이런 선수들 만으로도 역부족이 었던것은

1. 시즌 초,중반의 에이스 부재 라는 점은 윤성환과 크루세타가 무너지며 마땅한 선발 자원도 없었고

심지어 1,2,3 선발 외에는 모조리 경기때마다 로테이션이 틀려지는 이상한 시즌이 진행되었다.


2. 마땅한 해결사 4번타자가 없었다. 작년과 달리 20홈런 이상이 4명 나와주기는 했지만.

이중 득점권 타율이 3할이 넘는건 최형우 혼자 뿐이었다.


3. 선동렬 감독 이후 캐치프랜드와 같았던 [지키는 야구]라는건 올해 가장 극심했던 불팬 가뭄으로 인해

그저 먼나라의 꿈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안그래도 무너진 선발진을 권혁, 정현욱 만으로도 막는건 과부하가 있었기에

다른 계투진들을 투입해 봤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4. 데뷔 이후 지금까지 방어율 2점대를 넘어본적이 없던 오승환이 올해는 방어율 4점대를 기록했고

심지어 4강 다툼이 치열했던 마지막에는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는 등 뒷문이 부실해졌다.


5. 내야 수비의 불안정. 삼성 내야수비의 중심이었던 박진만이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아지자

손주인이나 김재걸, 김상수 등을 내야자원으로 활용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타격에서 좀 무리가 있었고

수비 또한 박진만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올해는 포수,마무리,중간계투,선발,내야수,외야수 할 것 없이

전구단 통틀어서 이 전력으로 오성이나마 한것이 다행...

내년에는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by Elisha | 2009/11/25 09:37 | 잡탕실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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